몇 년 전 영국과 미국 - 하버드대학의 STRIPED (Strategic Training Initiative for the Prevention of Eating Disorders) - 에서 섭식장애의 사회경제적 부담을 조사해 발표한 데 이어 바로 지난해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다름아닌 호주 섭식장애 국가 전략조직인 NEDC (National Eating Disorders Collaboration)에서 내놓은, 무려 앞으로 10년 간을 위한 섭식장애 국가 전략(National Eating Disorders Strategy 2023-2033)이었습니다. (* 흥미롭게도 호주 NEDC와 하버드대 T.H. 찬 공중보건대학원(T.H. Chan School of Public Health)의 STRIPED 모두 2009년에 출범했습니다.) 자, 일본은 2012년에 섭식장애치료가이드라인을 만들었습니다. NEDC와 흡사하면서도 다른, 일종의 전국 지원센터는 2014년에 문을 열었고요. 그리고 여기 한국이 몇십 년째 황량한 지금은 2024년 끝자락입니다! 다른 나라들의 상황을 조사하며 내내 속만 터졌던 저는, 10월 말, 호주의 제 든든한 지원자인 June Alexander에게 NEDC와 섭식장애 10년 전략에 대해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June은 이런 답장을 보내왔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타이밍인지! 바로 어제 저는 운영위원회 위원 자격으로 두 시간 가량 진행된 NEDC 화상회의에 참석한 참이었습니다.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운영위 위원은 총 3명에 불과해, 저는 목소리를 낼 기회를 얻지 못한 모든 사람들을 대신해 반드시 내 의견을 표명하려 한답니다. 어제도 당사자 참여 기회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현재는 총 25명의 위원 중 3명에 불과해요) 모두 그게 옳은 방향일 것 같다고 동의했습니다. 게다가 지난주에는 NEDC가 마련한 10년 전략을 실행하는 NSIN (National Strategy Implementation Network) 화상회의가 있었죠. 저는 이 두 조직에서 당사자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결성된 NSIN은 당사자 참여 폭이 훨씬 크고요. 이번 회의에서 저는 지니가 얼마 전 한국의 간호대학 학생들 앞에 직접 강사로 섰던 일을 참고할 만한 모범사례로 소개했어요. 호주의 대학들도 같은 접근방법을 채택했으면 좋겠습니다. 1인칭 스토리텔링은 질병경험에 대한 인식을 돕는 최고의 방법이니까요. 저는 국가 차원에서 당사자 경험을 대변하기 시작한 1세대에 속하고, 약 15년 전 NEDC가 처음 출범했을 때부터 위원으로 참여해왔습니다. Sarah Trobe는 NEDC의 신임 디렉터예요. 만약 Sarah에게 연락하고 싶다면, 생각하고 있는 인터뷰 주제에 대해 간단히 작성해 보내줘요. 제가 그걸 포워딩하면서 Sarah에게 지니를 소개할게요. 지난번 한국 간호대학에서의 일을 썼던 내 블로그의 기사 링크를 함께 첨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나는 Sarah Trobe에게 소개되었지만, 아마도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바쁠 Sarah는 답장을 빨리 보내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감감무소식으로 몇 주가 지났고, 저는 11월 18일쯤에 다시 메일을 보내봤던 것 같아요. 그렇게 겨우 연락이 닿은 게 11월 24일 무렵이었고, Sarah의 쉴 틈 없는 일정 탓에 거의 한 달 뒤인 12월 15일 일요일 한국 시각으로 오전 8시에 화상회의 형태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일단 그렇게 구두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더 궁금한 것이 있다면 메일로 추가 질문을 전달하기로 했지요. 그 12월 15일이 바로 며칠 전이었고, 우리는 드디어 만났습니다. 마침 한창 계엄령 사태를 겪고 있던 한국에서 저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14일 토요일에 사무실에 출근해 얼마간 일하다 인터뷰 준비는 전혀 하지 못하고 허탕만 친 채 돌아왔고, 그날 자정이 지나 눈이 떠진 김에 노트북과 가방을 챙겨 가까운 스터디카페로 향했습니다. 그렇게 새벽 5시쯤까지 거기서 질문지를 작성했어요. 그렇게 돌아와서 - 잠깐 쪽잠을 자고 일어나, 인터뷰 준비를 갖췄습니다. * * * 지난해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진행하는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님의 참고인으로 출석하게 된 김율리 교수님께 출석일 바로 전날 찾아뵙고 열심히 알려드린 것도 일본과 호주의 국가 전략조직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때까지도 사실 저는 호주 NEDC의 조직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2009년 노동당 정부에서 섭식장애 필드에서의 요구를 받아들여 NEDC 설립에 착수했을 때, 호주 보건복지부와 NEDC 사이에서 “계약을 체결했다”고 하는 건 다름아닌 Butterfly Foundation이라는 유명한 섭식장애 비영리 자선단체였거든요. 그리고 이미 수많은 섭식장애 관련 단체들이 거기 함께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 같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짠! 하고 NEDC를 처음 만든 게 아니었던 거지요. 저는 일단 Butterfly Foundation의 연혁부터 살펴보았습니다. 이 재단은 2002년에 설립됐는데 - 재단 이름이 너무 익숙한 저는, 그보다 훨씬 일찍, 90년대 말쯤에는 설립된 단체가 아닐까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놀랐습니다. 오래 전 20대 때 인터넷에서 그 재단 이름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 거식증으로 두 딸이 고생하는 것을 내내 지켜봐야 했던 한 어머니가 창립자였다니, 역시 가장 힘이 센 건 질병 경험 당사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재단은 실로 수많은 방면의 일들을 해냅니다. 직접 치료시설을 열기도 하고, 전화 상담이 가능한 핫라인을 설치하고, 뿐만 아니라 액센추어 같은 컨설팅회사의 도움을 받아 섭식장애 질병부담 연구 같은 충실한 자료들도 만들어냈습니다. 나중에 Sarah에게 들어보니, 이 재단은 계속해서 상황에 맞춰 자신이 할 일을 변화시키고 그렇게 적응, 진화해 왔다고 합니다. 즉, 초기에 활발히 했던 작업도 그 중요성이 낮아지면 다른 과업에 집중하는 식이었다고요. 초기엔 직접 치료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팔을 걷어부쳤지만, 지금은 신체상(body image) 문제 등에 초점을 맞춘 대중 캠페인에 주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 이렇게 생각했어요: Butterfly Foundation은 기존에 이미 존재했던 치료센터 및 인프라와 협력하고 합을 맞추는 일에 초점을 맞췄지만, 어느 시점에는 이 모든 치료 인프라를 통합하고 개선할 국가 수준의 전략이 필요하다고 느꼈을 것이고 그래서 NEDC가 출범하게 되지 않았을까, 라고요. 다음은 2024년 12월 15일 일요일 아침 8시부터 40여 분 간 진행된 저와 Sarah Trobe의 화상회의를 그대로 전사한 내용입니다. 박지니: NEDC에 대해 궁금한 점이 정말로 많습니다. 일단, 완전히 새로운 시스템을 운영하고 전례 없던 돌봄 및 지원 시스템을 호주 전국을 아울러 구축한다는 일이 과연 어떤 일일지 상상이 가질 않습니다. NEDC 디렉터로서 하루 일정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Sarah Trobe: 좋은 질문이군요. 내 하루 일정이… 가만 있자… 그때그때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제가 맡은 NEDC의 디렉터라는 역할이 어떤 면에서 정말 중요하냐면, 정말 각양각색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우리 팀원들을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죠. 지금 우리가 집중하고 있는 건 우리가 이제 12개월 전에 발표한 국가 단위 전략을 이행해 나가는 일이고, 저는 팀원들이 각자가 맡은 부분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결국 일이 잘 진행될 수 있게 본격적인 지원군이 되어주는 역할을 한답니다. 제가 하는 일 중 또 다른 정말 중요한 일은 호주 전역에 있는 모든 동료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긴밀히 협력하는 그 작업입니다. 호주 전역에 분포해 있는 수많은 섭식장애 관련 단체와 치료센터의 디렉터, 대표들을 일일이 만나고, NEDC가 현재 그들의 작업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고 있는지, 우리가 우리 자원과 지식을 제대로 공유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화상회의가 정말 여러 번 잡힙니다! 서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잘 알아야 하고, 국가 단위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이 전략이 어떻게 각 주와 지역에 실질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고요. 아마도 그 일이 제가 NEDC 디렉터로서 가장 사랑하는 일인 듯합니다. 섭식장애와 관련된 각 섹터 사람들, 정신보건 쪽 사람들, 그리고 물론 정부 쪽 사람들과도 만나서 함께 일하는 일이요. 박지니: 뿐만 아니라 호주 내 각 지역 역시 자체적인 섭식장애 장기 전략이 있잖아요. 저희는 아무것도 없는데! 너무 놀라운 일이에요. Sarah Trobe: 오, 그래요, 맞아요. 그 얘기를 잠깐 하자면… 처음에 섹터 전반에서 나왔던 목소리는 국가 단위의 전략이 있다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요구였어요. 그로써 호주 전역에 균일하게 적용되는 돌봄 체계를 구축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나자 각 주에서 각자 나름의 전략이 필요해졌죠. 우리는 이걸 국가 단위 전략의 ‘번역(translation)’이라고 표현하는데, 각 지역은 거주하는 인구 구성부터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요구가 존재하기 때문이지요. 이때 국가 단위 전략은 호주 전반에 걸친 이상적인 상태를 그려 보이고, 거기서 각 주의 전략은 각 주의 상황에 기반해 각자에게 무엇이 정말 필요한지를 고려해 적용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뉴사우스웨일즈, 빅토리아, 그리고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주 단위 전략이 나왔는데, 오, 그래요,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전략이 지난 목요일에 나왔으니까 이제 사흘 됐네요. 우리는 이들 주 및 지역과 아주 긴밀히 작업하면서 NEDC 전략의 큰 틀인 ‘단계식 돌봄 시스템(The Step System of Care Framework)’과 지역 단위 전략이 잘 조율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이 같은 전략 구축의 배경에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분들의 요구가 있었어요. 그분들은 우리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지, 그게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제안하고, 그럼 우리는 어떤 확신을 가지고 일을 추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NEDC의 구축과 10년 대전략 모두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분들의 요구였습니다. 지니, 따지고 보면 이래요. NEDC가 2009년에 출범했으니 우린 거의 15년을 일해 온 셈인데 국가 단위 전략이란 건 작년에야 나왔잖아요. 이런 상위 전략을 당장 먼저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닌 거예요. 그에 앞서 많은 일들이 순차적으로 먼저 있었고, 무슨무슨 프레임워크도 계속 있었어요. 그러면서 우리 모두 돌봄과 지원 ‘체계(system)’라는 것이 어떤 형태여야 하겠다는 걸 철두철미하게 이해하게 됐고, 그 이해를 기초로 최상위 전략을 만들 수 있었던 거예요. 그게 아니라 처음부터 당장 국가 단위 전략을 만들자고 하고, 그런데 전체 ‘체계'가 어때야 하는지는 아직 오리무중이라면 그건 일의 순서를 너무 건너뛰는 거겠죠. 박지니: 저는 한국에도 NEDC 같은 조직을 만들고 싶다고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는 입장이라 아주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차원에서 NEDC의 운영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Butterfly Foundation이 먼저 있었고, 그 다음 2009년에 호주 정부가 Butterfly Foundation과의 계약(?)을 통해 NEDC를 설립했습니다. 맞나요? 저는 그 과정에서 Butterfly Foundation의 역할이 과연 무엇이었는지가 항상 궁금했어요. Sarah Trobe: 그때 상황을 이야기해 줄게요. 2000년대에 호주 정부는 섭식장애 치료 및 지원 인프라와 관련해 상당히 많은 다양한 요구를 받게 됩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난처했을 거예요. 너무나 다양한 목소리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그 같은 의사결정을 맡을 단체를 설립하고 거기에 펀딩을 지원하는 게 어떻겠냐고 판단한 거지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분들도 그게 옳다고 본다는 의사를 전했고요. 당시 굉장히 열심히 활동하면서 힘 있는 목소리를 내 주신 분들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정부를 찾아가 만약 최상위 의사결정을 위한 조직을 만든다면 그건 섭식장애 관련 모든 섹터가 협력하는 일종의 ‘콜렉티브(collective)’였으면 한다고 의견을 전했고, 그때, 당시 2009년은 노동당 집권기였는데요, 정부에서도 그래, 좋아, 우리가 그 별개의 단체들에 자금 지원을 할게, 그 대신 계약은 Butterfly Foundation과 맺음으로써 재단이 거버넌스, 재정, HR 같은, 소위 말해 ‘간접비’ 부분에서 저희를 지원하게 된 거예요.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사무실 건물을 마련하고… 하는 일을 모두 Butterfly Foundation에서 맡아 해 주었도, 그래서 NEDC가 처음 생겼을 때는 Butterfly Foundation 대표가 NEDC의 디렉터도 맡았었습니다. 그렇게 5년을 운영하고 그녀는 물러났고, NEDC는 한층 더 독립적으로 일하게 됐죠. 물론 지금도 재단과 아주 긴밀하게 일하고 있고, 가령 거버넌스나 회계, 그 외 서비스에 대해 재단이 용역을 맡아 해 주는 데 대해 저희가 사용료를 내고 있고요. 하지만 우리 작업 자체는 훨씬 독립성을 띠게 됐습니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는 조직이에요. 아주, 정말 소규모 조직인데, 우리가 맡은 일은 섭식장애 관련 각 섹터를 한데 모으고 각자의 자리에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이 모든 사람들과 지식을 공유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는 편이, 즉 우리가 호주 전역에 지식과 자원을 공유하고 함께 합을 맞춰 일하는 것이, 개개인이 자력에만 의지해 고군분투하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일 테니까요. 또 우리는 전국에 걸친 각 섹터 사람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 데도 공을 들이며, 이를 통해 정부에도 통합된 요구를 전할 수 있게 하죠. 박지니: 제가 읽기로 Butterfly Foundation은 2002년에 한 어머니에 의해 설립됐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놀라운 건, 수년에 걸쳐 재단이 성취해 온 일들이에요. 리포트 발간, 치료 프로그램 마련, 핫라인 설치, 그리고 학교 교육프로그램까지 만들어 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이해해도 될까요? Butterfly Foundation이 기존에 있던 치료센터나 클리닉들과 협업하는 데에 초점을 뒀다면, 새로 설립된 NEDC는 국가 단위 전략을 만들어 전국에서 이루어지는 섭식장애 치료 방침을 동기화하는 역할을 위임받았다고 말이에요. Sarah Trobe: 오, 그래요, 맞아요. Butterfly Foundation의 역할은 저희와 사뭇 다르죠. 사실 재단의 역할은 처음 설립되었을 때 이후로 많이 변화해왔다고 봐야 해요. 22년 전만 해도 호주에는 섭식장애 관련 단체가 전혀 없었습니다, Butterfly Foundation이 유일했죠. 그래서 굉장히 광범한 역할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낮병원 프로그램 같은 임상 서비스 옵션을 제공하기도 하고, 재단이 위치한 뉴사우스웨일스 지역에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다 시간이 흐르며 다른 주와 지역에도 저마다의 섭식장애 조직이나 단체가 생기기 시작했고, Butterfly Foundation도 치료 서비스 관련한 작업은 점점 덜 하게 됐지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누구나 전화를 걸어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핫라인을 운영 중이고, 주로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동료지원 프로그램도 많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전국적으로 영향을 행사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섭식장애 예방 및 지역사회 인식개선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요. Butterfly Foundation은 굉장히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갖고 있다고 보시면 돼요. 그 오랜 시간 동안 홀로, 그것도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으니까요. 지역사회 교육 측면에 있어서 재단은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학교에서 직접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체상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지요. 현재까지도 호주 전역에서 활동 중이고, 저희 NEDC와는 아주 다른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요. NEDC에서는 직접 임상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요. 섭식장애 환자 분들을 직접 만나고 치료하는 일을 하지는 않죠. 우리가 하는 일은 시스템 수준의 일이에요. 전체 치료 및 지원 시스템은 이런 체계를 갖춰야 한다, 프레임워크는 이렇고, 가이드라인은 이러이러하다, 그러니 이에 기반해서 저희와 협력하는 호주 전역의 정신보건 서비스 제공기관들에 여러분은 이런 걸 좀 하셔야 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식이에요. 그럼 각 기관들에서도 각자 해야 할 일을 훨씬 명확하고 쉽게 인지할 수 있게 되지요. 즉, 좋아요, 내 역량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섭식장애를 조기 발견하는 일이에요, 저는 진단평가를 할 수 있어요, 저는 섭식장애 진단을 받은 사람들이 그에게 맞는 치료과정을 시작할 수 있게 안내할 수 있겠어요… 그렇게 역할 분담이 되겠죠. 그 같은 ‘단계적 돌봄 체계 프레임워크’는 정말 중요해요. 지니, 알고 있겠죠? 먼저 예방(prevention)이 있겠고, 그 다음은 발견/진단(identification), 초기 대응(initial response), 치료(treatment), 그리고 심리사회적 회복 지원(psychosocial recovery support)이 필요하지요. 섭식장애와 관련해 서로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각 섹터의 그 모든 관계자들이 각자 맡아야 할 일을 잘 숙지하게 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왜냐면, 잘 아시겠지만, 많은 곳들이 섭식장애 문제에 관해서는 자신 없어하거나 불안해 하거든요. 흔히들 극단적인 저체중 환자를 맡는 것을 상상하거나, 사실상 그보다 더 흔한, 다른 양상의 섭식장애 환자들에 대해선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즉, NEDC에서 우리가 하는 역할은 이런 거예요. 여러분 기관이 당장 섭식장애 환자 치료를 맡으라는 게 아니에요. 여러분은 여기로 찾아오는 환자들에게서 섭식장애 증후를 일찍 인지해 내고 초기 대응책을 조정해 주는 역할만 맡으시면 됩니다. 다시 말해, NEDC가 수립한 전체 체계를 이분들이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해서, 그 전체 체계 속에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으며 어떤 역할을 하면 되고, 또 그 밖의 일은 어디로 의뢰할 수 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려고 하고 있어요. 박지니: 또 하나 제가 생각한 건, 제 자신이 만약 NEDC에서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상상했을 때 제일 난처할 것 같은 부분은, 바로 일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길지에 관한 일이겠다는 것이었어요. 국가 수준의 전략이라는 건 정말 중요하지만 만드는 데 꽤 긴 시간이 소요될 텐데, 그러는 사이 섭식장애 환자를 지금 당장 치료할 임상 인력을 구축하는 일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셨는지 궁금합니다. Sarah Trobe: 음, 그래요, 대화죠, 정말 많은 대화가 필요한데… 많은 대화,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전문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게 필요하지요. NEDC의 모든 일은 ‘협력(collaboration)’이라고 봐도 좋을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 자체가 내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니까요. 그냥 우리 사무실에 앉아서 우리끼리 판단을 해서 이게 국가 전략입니다, 하고 뭔가를 만들어 내서 뿌리는 게 아니죠! 우리가 뭔가를 판단할 수 있는 기틀이 되는 건 무엇보다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로부터의 조언과 자문입니다. 최종 발표된 섭식장애 국가 전략에는 총 141개의 실행과제가 포함돼 있습니다. 여전히 너무 많은 편이죠! 우리가 한 일은, 다른 일들에 앞서 먼저 일어나야 하는 근본적 변화는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이었어요. 또 그 과정은 NEDC의 운영위원회와의 논의를 거쳐 이루어졌고, June Alexander 역시 참여하고 있는, 섭식장애 관련 전 영역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전략 실행 네트워크도 갖고 있어서 그분들의 도움 역시 받을 수 있었죠. 우리가 파악한 것은, 제일 먼저 섭식장애 환자를 기존의 업무 영역 안에서 돌볼 수 있는 정신보건 서비스를 충분히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어요. 다시 말해, 섭식장애 환자들은 치료받을 수 있는 곳이 필요한데 섭식장애 ‘전문’ 시설을 설립하자고 해서는 상황 국면을 해결할 수가 없으니까요. 섭식장애만 다루는 ‘전문’ 치료자, ‘전문’ 치료시설에 매달리는 건 답이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섭식장애 역시 정신보건 관련 질환이고, 현재 호주에선 수백만 명의 섭식장애 환자들이 스스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찾아갈 곳이, 치료 받을 수 곳이 없거든요. 그러니까 NEDC에서 우리의 역할은 제일 먼저 기존의 정신보건 서비스 기관들에 섭식장애 환자를 보는 일을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이건 여러분의 일이다, 여러분도 충분히 섭식장애 환자를 도울 수 있다고 말하고, 그곳들의 애초 정책을 바꾸고, 관점을 변화시키고, 인력 수련을 시키고, 그래서 마침내는 섭식장애 환자들이 치료 받을 수 있는 옵션이 생기게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었어요. 찾아갈 수 있는 치료자들이 충분히 많아서 섭식장애 환자들이 호주 어디에서든 선택지를 갖고 찾아갈 수 있게 말이죠. 시스템 변화는 그 어떤 지점의 것이든 중요하지만, 변화가 다른 무엇보다 먼저 일어나야 할 곳이 있어요. 그런 다음 다른 변화가 뒤따를 수 있는 거죠. 박지니: 섭식장애 돌봄 및 지원 체계를 위한 국가 단위 전략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겠다고 제가 느끼는 건, NEDC가 해야 했던 건 결국 기존에 없었던 것을 새로 만드는 일이라 섭식장애의 다양한 필드에서 기존에 활동해 왔던 이들이 불만을 표출하거나 저항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 과정이, NEDC 홈페이지에서 그렇게 쓰여 있었는데, “돌봄의 ‘시스템’을 수립하고 정착시킨다(building and embedding a system of care)”라고 표현돼 있더라고요. 저 역시 ‘시스템’이라는 표현에 동의합니다. 아무튼, 그 같은 어려움을 어떻게 대처하셨나요? Sarah Trobe: 맞아요, 그럴 수 있죠. 우리가 처했던 상황은 특별했는데, 이래요. 섭식장애 국가 전략을 만들자는 아이디어 자체가 기존 섭식장애 치료 체계의 리더들로부터 나왔던 거예요. 우리한테는 국가 수준의 전략이 필요하다, 그리고 너희가 그걸 만들기에 가장 적절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의 일이 호주 각지의 동료 섭식장애 전문가들로부터 훼방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원한 일이었고, 또 우리가 국가 전략을 만든 과정도 결과적으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수없이 많은 자문을 거치고 그래서 정말 사람들이 원하는 전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한 과정이었으니까요. 사실 국가 전략이라고 해도 어떤 전략이 될지는 상상하기 나름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말 그대로 수천, 수만 명의 사람들과 논의하고, 전략에 어떤 내용이 담기길 원하는지, 어떤 내용이 실려야 그들에게 도움이 될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한지를 파악해 나갔죠. 그러니까 정부 관계자, 보건의료 전문가, 섭식장애 전문가,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와 그 가족, 정책 입안자… 수많은 영역의 사람들과 만나고 논의했어요. 그렇게 초안을 작성하고, 그런 다음 그걸 가지고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끊임없이 피드백을 받고, 그 모든 과정을 거쳐 15개월 전에 국가 전략을 론칭할 수 있었던 거죠. 다행히 그에 대해 부정적 피드백은 단 하나도 없었답니다! 모두가 자신들이 필요로 했던 전략이라고 전해왔고, 또 따르기도 수월하다고요. 이런 방식이 아니면, 아시겠지요, ‘수용과 전념(acceptance and commitment)’을 사람들로부터 창출할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이건 아닌 거예요, 자, 여러분, 우리가 지금 국가 전략을 만들려고 하는데요, 자, 여러분, 여기 전략이 나왔습니다, 같은 방식 말이에요. ‘관계(relationships)’를 공고히 쌓는 게 중요하고, 사안을 그 관계 속으로 갖고 들어가서, 그들이 말하는 바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이 발언했던 내용들이 정말로 최종 전략안에 반영되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그 모든 공들인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그러니까, 지니, 해야 할 일은 기존에 정신보건 서비스를 제공해 온 사람들과 그 시설에서, 그때까지는 섭식장애 환자를 보지 않았지만 기꺼이 섭식장애 관련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수용과 자발성(acceptance and willingness)’을 얻어내는 일이에요. 그들 생각엔, 당장 섭식장애 환자를 받으라는 얘길 들으면, 그건 우리 영역이 아닌데요,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의 할 일은 그들의 관점을 바꾸는 일이고, 그에 필요한 것은, 결국 이 주제로 돌아오게 되는데 바로 ‘관계’ 정립이에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지니. 정말로 지니가 중점을 둬야 하고, 우선시해야 하는 건, 한국에서의 작업에 핵심 이해당사자가 될 그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예요. 그들을 찾아가고, 그들의 얘기를 듣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을 이해하고, 그들이 그 일들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지를 살피고, 섭식장애 환자를 보는 것에 대한 그들의 염려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들과 함께 문제 해결에 참여할 수 있는 거죠. 섭식장애 돌봄과 지원을 위한 작업에 참여하는 일을 그들이 덜 어렵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우리 작업이에요. 가령, 지금 있는 팀 멤버들은 아직 한 번도 섭식장애 환자를 본 적이 없다, 어떻게 하느냐고 물어 온다면, 우리가 도울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겪을 수 있는 허들을 낮출 수 있다고 해 주는 거죠. 또 다른 중요한 일, 꼭 유념해야 할 일은, 정책 결정 권한이 있는 사람들을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는 점이에요. 다시 말해, 정부의 지원을 반드시 갖춰야 해요. 섭식장애 치료 환경에 관해 이러이러한 일들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우린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그 일들은 기존의 보건의료 서비스, 혹은 정신보건 서비스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일일 테니까요. 권력 면에서 충분히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우리 편에 두어야, 그 지원을 통해 조직적 변화를 꾀하고 임상가들의 권한을 강화해 줄 수 있죠. 즉, 우리에겐 이런 하향식(top-down) 지원도 필요하고 상향식(bottom-up) 지지도 있어야 해요. 그 두 가지 양방향 지원이 있어야 변화를 만들 수 있죠. 박지니: NEDC의 많은 업적 중에서 제가 생각했을 때 정말 감탄스러웠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의 지식을 진심으로 중시하고, 실제 프로젝트와 그 진행 과정 중에 그들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투입한다는 점이었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한가요? 대부분 그러듯이, 일단 초안을 만든 다음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이 리뷰하고 코멘트를 하는 식인가요? 혹은 맨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당사자들의 제안을 듣고 시작하나요? Sarah Trobe: 음… 물론 지금은 이미 국가 전략이 나온 상태이기 때문에 그 전략 내용 안에 우리가 할 일이 기술돼 있어서 상황이 다르지만… 우리가 작업하는 방식은 보통 ‘실무그룹(working group)’ 혹은 ‘자문단(advisory group)’을 만들고 이들과의 논의를 통해 할 일을 정하는 방식이에요. 그러니까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분들, 임상 전문지식을 가진 분들, 연구자 혹은 학계 지식을 가진 분들을 모으는 거죠. 항상 우리는 이 세 가지 측면의 전문성으로부터 우리가 할 일에 대한 길 안내를 받아요. 이들 자문단이 프로젝트 내내 우리의 의사결정을 돕는 거죠. 네, 프로젝트가 어떤 형태여야 하는지 틀을 잡아주고, 그런 다음 모니터링하고, 모든 과정 내내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그들이 맡습니다. 그 모든 순간순간에 NEDC의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건, 우리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정말로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의 필요를 충족하고 있는지 하는 것이죠.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작업 자체에 의미가 없어지니까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근본적으로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일이라는 거죠. 그러니 프로젝트 자체에 근본적으로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분들을 참여케 하는 것이 중요하고, 또 우리 팀에도 당사가 경험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식으로 일하고 있고, 우리 조직 자체가 지닌 열의와 헌신도 사실 특별하지요. 우리는 당사자 분들의 기여에 많이 의존하는데… 음…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전문성을 프로젝트에 반영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가령, 우리가 처음 국가 전략을 기획할 당시에는 8명의 당사자 분들로 구성된 포커스 그룹을 운영했습니다. 몇 가지 핵심 질문을 만들고, 그로써 촉발된 그분들의 다양한 관점을 청취했지요.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라 하더라도 각자가 겪은 경험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다양한 관점을 얻는 게 중요해요. 젠더, 연령, 사는 곳, 경험했던 섭식장애의 종류와 양상, 그들의 인종적, 민족적 배경, 문화적으로 혹은 언어적으로 다른 배경을 갖고 있는 이들인지까지를 고려해서요. 그 모든 차이를 프로젝트에 녹여내야 하고, 까닭에 그분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듣는 일이 중요합니다.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때, 우리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진심으로 들어야 하고, 스스로 기꺼이 취약한(vulnerable) 상태에 있어야 해요. 그래서 그들이 말하면, 오, 우리가 이건 잘못했군요, 어떻게 하면 다른 식으로 해나갈 수 있을까요, 물어야 하죠. 그게 정말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들의 말을 듣되 거기서 끝나고 정작 그와는 무관하게 일을 진행한다면, NEDC 같은 조직이 있을 이유가 없는 거지요. 또 중요한 건 일 진행의 일관성이기도 하기 때문에, 우리는 운영위원회라는 공식적 조직을 두고 있고요. NEDC 웹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을 거예요. June Alexander와 우리가 서로 잘 알고 있는 것도 그 덕분이죠. June을 포함해 몇 분의 다른 당사자 분들이 운영위원회에 계세요. 그러니까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관점이 국가 전략 전반에도 반영되었고, 그 하위 각각의 프로젝트에도 반영되는 식이랍니다. 박지니: NEDC의 국가 단위 10년 전략을 읽으면서, 제가 제일 먼저 관심 있게 주목한 부분은 ‘지역사회 기반 치료(community-based treatment)’라는 항목이었어요. 그건 정말 가장 중요한 부분이면서도 가장 실현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잖아요. 특히 어린 환자에겐 이 체계가 있으냐 없느냐가 굉장히 결정적인데, 이런 사례를 들은 적이 있거든요. 열 살 남짓한 아이가 섭식장애 증상을 보여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일반 정신과 폐쇄병동에 입원됐다는 거예요. 당연히 그 경험은 전혀 치료적이지 않았고 아이에게 떨치기 어려운 트라우마만 남겼죠. Sarah Trobe: 지역사회 기반 치료가 중요한 까닭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병원에서 회복되느냐 하면 그게 아니기 때문이에요(...people don’t recover in hospital). 병원에서 사람들은 의학적으로 안정된 상태에 있을 수 있죠, 그 보호적인 환경에서 환자에게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는 걸 막을 수 있어요. 하지만 회복이 일어나는 건 지역사회에서라는 것, 가족, 친구와 연결돼 있는 환경에서라는 걸(...that recovery happens in the community when people are connected with their family and their friends…) 우린 잘 알고 있습니다. 평범한 생활 환경에서 그들이 섭식장애와 싸울 수 있게 포괄적인 지원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사실상, 진정한 의미의 지역사회 기반 치료가 있었던 적은 없었죠.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정말 안 좋은 상태가 되어서야 병원을 귀착점으로 삼았던 거고요. 그래서 우리가 마련한 국가 전략의 궁극적 초점은 현재 지역사회 치료 인프라가 어떤 지역에 얼마나 마련돼 있으며 그 기존 인프라를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에 있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섭식장애는 자신의 담당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고, 섭식장애는 당연히 섭식장애 전문 치료시설에서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우린 그걸 바꿔야 했어요. 호주는 메디케어(Medicare) 시스템이 있다는 점에서 운이 좋은 환경이었죠. 그 역시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령 메디케어가 커버하는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서비스가 있기 때문에, 정신보건 문제에 맞닥뜨린 사람들은 공공 정신보건 시스템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고, 각 주와 지역마다 자체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 의료 서비스가 있고 또 연방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보건 서비스도 호주 전역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런 서비스는 모두 무료이기도 하고요. 물론, 개인 클리닉도 존재하고 거기선 자비를 들여 치료를 받을 수 있죠. 메디케어 리베이트(Medicare rebate)라는 것도 있어서 자비 내는 걸 좀 줄일 수도 있고요. 즉, 호주에는 이미 사람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이 존재하고 있었고, 국가 전략을 만듦으로써 우리가 했던 일은 어떤 서비스가 어떤 유형의 환자를 봐야 하는지를 명확히 기술한 일입니다. 즉, 호주의 정신보건 체계에는 현재로서 섭식장애를 처음 발견하고 조기개입을 할 수 있는 곳, 심각하지 않은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있을 텐데, 그들에게 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역량을 강화할 수 있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실질적으로 그분들이 섭식장애까지는 아닌 이상섭식(disordered eating) 증상이나 심각하지 않은 섭식장애, 폭식증, 폭식비만, 비전형적 섭식장애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말이죠. 한편, 공공 정신보건 서비스에서는 좀 더 심각한 상태의 환자를 돌보게 합니다. 거식증, 혹은 비전형적 거식증 환자 분들이 거기서 치료를 받으시죠. 개인 병원의 경우에는 의사와 그 외 보건 전문가의 지식, 경험, 역량에 따라 그에 맞는 사례를 다룰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중요한 건 어떤 서비스 제공자가 어떤 범주까지를 다룰 준비가 되어있는지를 파악하고, 이에 따라 그들이 어떤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일이라 해야 되겠죠.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환자들은 이렇게 체계적으로 기술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확인할 수 있고, 일반의(GP)가 환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주는 것도 가능하겠고요. 최근에는 환자가 스스로 진행할 수 있는 온라인 자가학습 치료 프로그램(online self-paced treatment)이 생겨 유용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의사 없이 진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여전히 우리가 권장하는 건 GP를 방문해 신체 상태를 확인받는 것이지만, 꼭 그러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스스로 온라인 상에서 치료를 진행할 수도 있게 됐습니다. 경증에서 중증도 수준의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라 해야 할 테고, 굉장히 훌륭한 자원으로 보고 있어요. 무료로 제공되고, 누구나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중요한 ‘빈 틈’을 채우는 무언가가 생긴 셈이죠. 박지니: 정부 지원금이 NEDC 같은 조직을 운영하는 데 충분할 만큼 제공되나요? 그런 식의 운영이 과연 한국에서도 가능할지 저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일단 정부는 섭식장애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 넘쳐난다고 생각할 테고요. 또 지원을 해 준다 해도, NEDC 같이 탄탄한 조직을 운영할 만큼 많은 지원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요. Sarah Trobe: 네, 그래요. 좋은 질문이에요… 무엇부터 말하는 게 좋을까요, 우리는 공공 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데… 얼마나 받는지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연당 1맥만 달러예요! 호주 정부가 얼마나 한 지출을 하고 있는지를 따져보면 결코 큰 금액이 아니죠. (박지니: 아, 아니, 지금 환율 계산을 해 봤는데, 그럼 1년에 9억하고 400만원 정도인데요?! 이 정도면 충분하고도 남죠 ㅠㅠㅠㅠㅠ 정말 부럽네요 ㅠㅠㅠㅠㅠㅠ) NEDC는 아주 실력 있고 헌신적인, 소수정예의 팀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그 소수의 인원으로 무척 많은 일을 하고 있지요! 덕분에 정부에 이렇게 말할 수 있죠. 이러이러한 것을 위해 이만큼 펀딩해 주면, 그러니까 우리가 어마어마한 자금 지원을 요구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럼 정부로서도 합리적인 수준의 지출로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이에요. NEDC는 사실 훨씬 작은 예산을 기반으로 출범했었고, 그 규모로 효율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해를 넘기며 예산을 조금씩 늘릴 수 있었어요. 이 일은 중요하며 정부가 투자할 만한 일이라고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건, 첫째 유병률 자료예요. 현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섭식장애로 고통받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자료죠. 현재 호주에는 최소 1백만 명의 사람들이 섭식장애를 앓고 있어요. 호주는 인구가 방대한 나라는 아니고, 아마도 실제 섭식장애 환자 수는 그보다 많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충분한 데이터가 아직 없는 상황이에요. 또 다른 중요한 근거는 아마 지니도 Butterfly Foundation 홈페이지에서 보았겠지만, 사회경제적인 질병부담 산출 자료가 될 거예요. 그럼 정부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섭식장애에 연간 1백만 달러만 투자하면, 사실상 640억 달러의 손실을 입혀 온 섭식장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말이죠. 섭식장애가 호주 경제에 이만큼이나 부담을 지우고 있는데, 치료에 들어가는 의료비, 사람들이 직장에 제대로 출근하지 못해서 생기는 손실 등등이 모여서 생기는 부담이며, 그렇다면 NEDC에 운영비를 지원해 섭식장애의 국가 부담을 줄이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업적이 되지 않겠어요, 라고 말할 수 있겠죠. 덕분에 우리는 정부로부터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어요. 호주 정부도 섭식장애가 큰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요. 노동당 정부도 그랬고, 자유당 정부도 그랬고, 독립적인 장관들도 마찬가지였어요. 이 일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섭식장애와 고투했던 혹은 고투 중인 누군가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장관들도 이 문제에 마음을 쏟고 있고요. 섭식장애가 공동체에 끼치는 심각한 영향에 대해 모두 분명히 보아왔던 사람들인 때문입니다. 또 중요한 건,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의 목소리일 거예요. 용기를 내서 정부 혹은 정치인들을 찾아가 ‘이것이 내 경험입니다. 이건 잘못됐고, 우리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 말이에요.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목소리를 내고 정부에 이를 전하면, 대개 정부는 귀를 기울입니다. 문제의 현 상황을 직접 목도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박지니: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맡으신 일은 설립된 전략을 이행하는 일이고, 그건 정말 큰 부담일 텐데요! 그래서 얼마나 바쁘실지도 짐작이 갑니다. 요즘 주로 어떤 주제나 이슈가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또 요즘 가장 자주 만나거나 자주 협력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Sarah Trobe: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글쎄요… 내가 한밤중에 잠 깨게 하는 주제가 뭐가 있더라… 처음 생각해 보는 거라서요. 아마도, 그래요, 우선순위에 관한 걸 거예요.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아주 작은 팀이라,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우리가 무엇보다 가장 큰 임팩트를 창출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랍니다. 그 질문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러니까 계속해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변화하고 진화하는 질문이기도 해요. 즉, 우린 항상 예민하게 보고 있어야 하죠, 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무엇을 알리고 있고, 이 자문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인지, 우리가 정말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를 말이에요. 그러니까 끝이 없고, 유연하고, 계속 적응해 나아갈 과정일 텐데,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관찰하고 그걸 우리가 갖고 있는 국가 전략과 연결시키는 일이라 해야 할 거예요. 제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보다 우리 국가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일 텐데요. NEDC의 국가 전략이 특별한 점은, 정부가 주도하고 조율하는 대신, 우리처럼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주도하는 전략이라는 점이에요. 이 같은 방식이 정말로 효과적일 수 있다고 전 믿습니다. 제게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우리가 ‘챔피언(champions)’이라고 부르는 사람들과의 관계일 거예요. 이 분들은 우리 일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변화에 헌신하며, 우리 일이 최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고 계신 분들이에요. 여기에는 Butterfly Foundation, ANZAED, Eating Disorders Queensland, Eating Disorders Victoria 같은 여러 주 기반 조직들과의 긴밀한 관계 역시 포함됩니다. 우리 분야에는 정말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이 분들과 자주 만나고 그 분들의 활동 내용을 듣고 우리 편의 진행 상황을 공유합니다. 동시에 호주 정부에서 시도하는 상위 수준의 정신보건 이니셔티브에 섭식장애가 포함되도록 노력하고도 있지요. 흔히 ‘상정된다(put on the table)’고 표현하지요? 가령, 현재 호주 정부는 전국적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수립하려고 하고 있어요. 그 중엔 초기 개입에 초점을 맞춘 서비스도 있는데, 아직 진단을 받지는 않았지만 정신질환의 초기 징후를 보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겁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이 정부 계획에 섭식장애도 포함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죠. 또 호주 정부는 심각한 정신질환을 지닌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도 론칭할 계획인데, 마찬가지로 이에 대해서도 우린 섭식장애 환자도있게 할 방법을 제안하고 정부와 협력해야 합니다. 여러 부처와 긴밀히 협력하며, 섭식장애를 애초 계획에 포함시키는 일이 어렵지 않도록 실질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지원해야 하죠. 박지니: 지금까지의 답변, 정말 감사드립니다. Sarah Trobe: 천만에요.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네요. 지니, 지금 갖고 있는 계획은 뭔가요? 박지니: 아,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건 곧 있을 섭식장애 인식주간이에요. 제가 전체 기획을 혼자 맡고 있기 때문에 정말 바쁜데,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Sarah Trobe: 그렇군요. 아까 Butterfly Foundation 얘길 했지만, 이 재단은 우리보다 훨씬 일찍부터 정신건강 사업을 시작했고, NEDC가 탄생하기에 앞서 7년 동안 지역사회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었어요. 지역사회의 인식을 바꾸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지니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런 기본적인 작업이고요. 그런 작업이 없다면 사람들은 고립된 채 홀로 고투할 것이고, 정부를 향한 목소리가 없다면 이렇게 고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할 수도 없겠죠. 호주에서도 인식 개선 작업이 무려 22년째 이루어져 왔지만, 여전히 스스로 섭식장애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해야 할 일이 여전히 많아요! 그러니까 지니,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준비하고 개최할 때 항상 생각했으면 하는 건, 지니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 작업이 앞으로 있을 모든 것의 기초가 될 테니까요. 박지니: 아… 하지만 전 제가 예순이 되기 전에 뭔가를 이뤄놓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Sarah Trobe: 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시간이 걸려요. Butterfly Foundation을 설립했던 그 어머니에 대해 말했었죠? 그분은 NEDC를 창립하는 데에도 가장 강력한 목소리를 내 주셨던 분인데, 2년 전에 우리 운영위원회 활동에서도 사퇴하셨어요. 이만 됐다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제 다 한 것 같다고 말이에요. 시간이 걸리는 일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녀는 뒤로 물러나 자신이 만들어 낸 변화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거예요. 혼자서 모든 걸 하다보면 힘들고 외로울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곧 함께할 누군가를 찾게 될 거예요. 섭식장애와 고투한 경험이 있는 누군가가 나타나 우리도 돕고 싶다고 해 올 거예요. 박지니: 네. 그리고 저는 당신의 팔 부상이 빨리 낫기를 기도할게요. Sarah Trobe: 오, 하하, 고마워요. 손목 부상이지만 별일 아니에요. 곧 좋아질 거예요. 감사해요. 박지니: 정말로 귀한 시간을 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혹시… 추가로 더 궁금한 점이 생기면, 이메일로 질문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Sarah Trobe: 물론이죠! 지니, 지금 계획은 뭔가요? 이 인터뷰 내용을 어떻게 활용할 계획인가요? 박지니: 먼저 이 영상의 오디오를 전사하고,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 게재할 콘텐츠를 만들 거예요. 그 이후에는 다른 플랫폼에도 이 내용을 퍼블리싱할 방법을 찾을 계획입니다. 또 이렇게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실행 계획을 논의해야 하겠죠. Sarah Trobe: 멋지네요. 고마워요. 또 다시 연락 줘도 좋습니다. 당신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어요. 박지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 * 그리고 박지니는 현재 Sarah Trobe에게 보낼 추가 질문을 작성 중이며, 답이 오는 대로 정리해 이 내용을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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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thor한국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잠수함토끼콜렉티브입니다. Instagram@rabbitsubmarinecol ArchivesCategori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