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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 (10)> ‘말기 거식증’과 조력사망 논쟁, 그리고 살아 있는 환자들의 정치

3/9/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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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죽은 사람들?
<섭식장애와 돌봄의 정치 (10)> ‘말기 거식증’과 조력사망 논쟁, 그리고 살아 있는 환자들의 정치


1930년대 후반, 스탈린 대숙청 시기. 레닌그라드의 감옥 앞에는 체포된 남편과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 가운데에는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도 있었다. 그는 훗날 <레퀴엠>의 서문에서, “푸른 입술”을 한 한 여성이 자신을 알아보고 이렇게 속삭였다고 회고했다. “이 일을 묘사해 줄 수 있나요?” 아흐마토바는 대답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한때 얼굴이었던 것 위로, 잠시 미소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강요된 침묵, 예기된 몰살 앞에서, 곧 잊힐 위협에 처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곳에 살았고 고통을 견뎠다는 사실을 기억해 줄 누군가, 그리고 그 기억을 멀리까지 전해 줄 누군가를 호명한다. 동시대 작가이자 언어학자였던 나데쥬다 만델슈탐은 추방된 남편이자 시인 이오시프 만델슈탐의 시편 전부를 숨기고 감춘 채 도망쳤다. 결국 그는 그 시들을 모두 암기했고, 도망치는 내내 잊지 않기 위해 되뇌었다. 지워지지 않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 있고, 살아가고 있으며, 싸우고 쓰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앞에 ‘대신 말해주려는’ 이들이 나타날 때, 그것은 전혀 다른 권력의 논리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환자 시민성과 질병의 노동

네 번째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힘겹게 끝마치고 바로 이튿날, 나는 미리 약속한 대로 유럽의 환자 권익 운동가 타마스 베레츠키(Tamás Bereczky)를 화상으로 만났다. 그는 ‘모두가 “환자”인 것은 아니다’라는 글에서, ‘(병을) 앓는다’는 의미를 명확히 하려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즉, 그에 따르면 ‘질병(disease)’, ‘병을 앓는 경험(illness)’, ‘사회적 환자 역할(sickness)’은 서로 구별되는 개념이다.

질병(disease)은 병리적 과정이며, 이러한 ‘하드웨어의 고장’이 환자의 노동이 시작되는 기본 조건이다. 병을 앓는 경험(illness)은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며, ‘건강하지 않음’을 살아내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경험이다. 여기서 몸의 현상학이 작동한다. 두 사람이 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어도 그들의 역사, 환경, 회복력에 따라 전혀 다른 병의 경험을 겪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질병의 노동(work of illness)’이 실제로 이루어진다.

‘질병의 노동’이란 환자가 처한 현실과 개인적 정체성을 화해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의미 만들기의 과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레츠키는 “질병은 하나의 직업”이라고까지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원해서 선택한 일이 아니라, 강제로 고용되어 좀처럼 그만둘 수 없는 하나의 “커리어”와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환자 역할(sickness)은 건강하지 않음이 사회적으로 표현되는 외부적 양식으로, 사회가 환자에게 수행하기를 기대하는 역할이다. 베레츠키는 낙인(stigma)이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사회가 이 세 영역을 뒤섞어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질병이 비가시적일 때 사회는 그 사람에게 사회적 환자 역할을 부여하기를 거부한다. 반대로 병을 앓는 경험의 표현이 지나치게 강하다고 판단되면 의료 시스템은 그의 질병을 단순한 “불안”으로 치부해 버릴 수 있다. 사회적 환자 역할이라는 지위는 결국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정신질환은 시간에 따라 정상과 비정상 사이를 오가며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환자 역시 그에 따라 평가받는다.

결론적으로 베레츠키는 환자의 당사자 경험(lived experience)이란 “다른 사람들이 공유하지 않는, 삶에 대한 물질적이고 구체적인 영향을 안고 살아가는 경험”이자 “비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획득된 전문적 지식”이라고 선언한다. 즉 환자는 단순히 어떤 서비스의 사용자(user)가 아니라, 특정한 물질적 현실에 대해 고유한 전문성을 지닌 존재이며, 환자 단체와 조직을 통해 그 현실을 적절히 보고하고 설명할 지식과 도구를 이미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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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마스 베레츠키. (출처: 24.hu)



나는 대한민국 보건복지부와 그 산하 기관들이 환자 경험을 철저히 무시하거나, 사실상 부재한 환자 참여 정책과 실천을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포장해 세계 학계에 발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 신물이 나 있었다. 더 이상은, 너무도 우스꽝스럽게 북한식 프로파간다를 닮은 행태—“세상 사람들! 우리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입니다!!!”—나, 혹은 일본 제국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태도—“세상 사람들! 우리는 우리가 정한 가장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환자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환자가 무슨 경험과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는 모르지만, 무엇이 최선인지는 우리가 제일 잘 압니다!”—를 방관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타마스 베레츠키를 인터뷰하기로 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애초에는 인터뷰라고 생각했던 화상 미팅은, 감사하게도 곧 장기적인 멘토십 계획으로 바뀌었다. 그는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단계별로 짚어 주었고,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나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HIV 경험 당사자 운동가로 활동을 시작한 인물이다. 내가 한국에서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는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었다며 그 작품으로부터 대략적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노동

잠수함토끼콜렉티브라는, 실질적으로는 1인 체제인 단체의 이름으로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실상 “비인간적인” 노동이라고 나는 반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 말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이다.

나는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고용직 노동자에 불과하다. 인식주간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도움이 필요할 때—가령 내가 직접 해낼 수 없는 디자인 작업이나 영상 촬영, 편집 같은 일들이 생길 경우—일부는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소액으로 모금해 준 후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원봉사자를 구해야 한다.

그 말은 곧, 누구에게도 나와 동일한 수준의 책임감을 요구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또한 언제라도 예정되어 있던 도움이 사라질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을, 어떻게든 내 깜냥 안에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일 저녁이면,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비좁은 월세방 안에서 낡은 노트북을 펼쳐 놓고 쪼그리고 앉아, 저녁 7시에 시작해야 하는 세션을 세팅한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내가 만든 번역 원고를 바탕으로 자막을 입혀 준 영상을 미리 다운로드해 두고,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으면 메일링을 한 번 더 보내거나 홍보 콘텐츠를 만들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엿새 내내 통역을 도와주기로 한 친구가 정각에 접속할 수 있는지 확인한다.

이번 인식주간을 위해 일부러 줌(Zoom) 계정을 유료 결제했지만, 어쩐 일인지 내 노트북에서는 녹화 버튼이 활성화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군가가 정시에 접속해 공동 호스트 자격을 부여받고, 나 대신 녹화를 시작해 주어야 한다. 게다가 내 노트북에서 강의 영상을 재생하는 동안 다른 작업을 하려 했다가는 영상이 도중에 멈춰 버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한 번 그런 일이 있었다.

그래서 사전 녹화된 강의 영상이 재생되는 대략 한 시간 동안, 나는 줌 미팅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고, 거기에 개입할 수도 없다. 인식주간 막바지였던 토요일 저녁, 앨리스 웨인렙(Alice Weinreb) 세션 때에는 세션 시작 10분 전에야 겨우 강의를 신청했던 강민영 편집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녹화 버튼을 눌러 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 금요일부터 토요일, 일요일까지 사흘 동안 나는 거의 한 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작업했다. 강의에 앞서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참고자료를 만들어 정리한 뒤 이메일로 공유했고, 세션이 끝난 다음에는 먼저 연자들에게 감사 메일을 보냈다. 이어 녹화 영상과 녹취록이 생성되면 다시 영상을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유튜브 채널에 올리고, 필요할 경우 녹취록을 번역해 이른바 ‘A/S 서비스’ 자료를 만들어 다시 공유해야 했기 때문이다.

도중에 피로가 몰려와 제대로 생각하기조차 어려울 때면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 잠시 알람을 맞춰 두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혹시 인식주간 세션 시간을 넘겨 버린 것은 아닐지 화들짝 놀라 깨어나곤 했다.

그렇게 밤낮이 뒤섞인 마지막 사흘이 지나자 몸이 부서질 듯 아팠다. 인식주간이 끝난 뒤 사흘이 지나도록, 잠들 무렵 귓가에 TV 소리 같은 것이 들리면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펼쳐졌다.

‘자막 작업이 아직 안 되었는데 어떡하지? 이 상태로 영상을 올리고 나서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잔상 같은 활성화. 후유증.

가끔 잠수함토끼콜렉티브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이 “전에 섭식장애 인식주간에서 사회 보시는 걸 봤다”, “사무실은 어디냐”고 묻는 일이 있다. 그럴 때면 순간적으로 복장이 터질 것 같은 기분이 올라오는 것을 꾹 눌러 참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결국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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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인식주간 때는 모든 세션이 오프라인을 병행해 진행되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가 서울대 캠퍼스 안에 있었기 때문에 장소도 서울대 캠퍼스의 강당으로 잡았다. 무엇보다 그때는 폭설이 내렸다. 나는 새벽에 사무실에 출근해 작업을 해야 했지만, 버스가 서울대 정문 앞에서 끊기면 아직 캄캄한 어둠 속에서 발이 빠질 만큼 쌓인 눈을 밟으며 자연대 건물이 있는 곳까지 걸어서 출근해야 했다.

문제는 주말이었다. 매점도 식당도 드문 캠퍼스인데, 주말이 되면 여는 곳 자체가 없었다. 나는 굶어도 괜찮았지만, 촬영을 맡아주신 분의 저녁식사를 해결하는 것이 문제였다.

마지막 날에는 눈비가 쏟아졌다. 나는 사무실 내 책상 밑에 보관해 두었던 샘플 도서들—새로 책을 낸 저자들의 샘플 도서를 참가자들에게 나누어 주기로 했는데, 그것이 단독 주최자인 내게 어떤 부담이 될지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채 결정해 버린 것이 실수였다—이 담긴 상자들과 그 밖의 갖가지 짐을 챙겨 강당이 있는 생활대까지 먼 길을 올라가야 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도 우산을 들 방법이 없었다.

도중에 종이 가방 하나는 비에 젖어 터졌고, 나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흩어진 것들을 어떻게든 주워 담으려는, 사실상 불가능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제 곧 사회를 봐야 하는 내가 홀딱 젖어 버린 것 따위는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울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분노가 막아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강당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촬영감독에게 저녁 식사를 건네준 뒤 돌아섰을 때였다. 그날 드디어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책을 나누어 줄 수 있다며 설레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지만, 나는 스스로도 당황스러울 만큼 전혀 기쁘지 않았다.


호프 버고와 #Dump the Scales

올해 섭식장애 인식주간 마지막 세션의 주인공은 영국의 유명한 섭식장애 당사자 운동가 호프 버고(Hope Virgo)였다. 그는 2018년 무렵부터 이른바 ‘체중계는 치워버려라(#Dump the Scales)’ 캠페인을 벌여 왔고, 2024년에는 ‘섭식장애에 관한 초당적 의원모임(All-Party Parliamentary Group, APPG on Eating Disorders)’의 사무국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자리는 2019년 APPG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그 전까지 영국 최대의 섭식장애 자선단체 비트(Beat)가 맡고 있던 것이었다. 이 역할 변화의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는 당사자 중심의 풀뿌리 시민단체가 한층 다양한 여론을 한데 모으는 역할을 맡게 된 셈이다. (비트는 내 책 『삼키기 연습』의 주된 배경이었던 세기 초 무렵에도 이미 잘 알려져 있던, 중요한 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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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p the Scales 캠페인은 매년 4월이면 국회 앞에서 시위를 연다. 그 자리에는 수많은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와 가족들, 연구자와 임상가, 정치인들이 함께 참여한다. 내게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영국 왕립 정신건강의학회(RCPsych) 섭식장애 분과 부의장인 아그네스 에이튼(Agnes Ayton) 박사가 형광 조끼를 입고 늘 선두에서 발언하는 모습이었다.

그 같은 임상가, 특히 정신과 의사의 참여는 한국에서는 전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APPG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노동당 리처드 퀴글리(Richard Quigley) 하원의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딸이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것을 지켜봐야 했던 아버지로서, 진심으로 행동에 나서고 있다.

자신의 병력이든 가족의 경험이든 섭식장애와 관련된 경험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유명 인사가 거의 없다시피 한 한국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여전히 동화책 속 장면처럼 들린다.

그러나 호프 버고의 이야기는 사뭇 달랐다. 임상의들을 운동에 동참시키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 임상의들은 꽤 뚜렷하게 두 그룹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한쪽에는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도 언제든 회복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섭식장애가 5년 동안 계속됐다면 그 시점에서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 임상가 집단이 있어요. 그리고 저희 활동을 지지하지 않는 쪽이 바로 그 두 번째 집단의 임상의들이에요. 저희는 계속해서 그들과도 함께 일할 수 있도록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 입장은 분명해요. 그들이 우리와 함께 일하게 되면 우리도 더 강해 보일 수 있고, 자금 확보에도 도움이 되고, 서비스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에요. 서로 시간을 낭비하면서 계속 싸우기만 하는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생각에는, 일부는 정말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우리와 함께하려 하지 않는 임상의들 중 일부가 이곳에서 섭식장애로 인한 여러 사망 사례에 책임이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계속 이런 문제를 두고 캠페인을 하면 그동안의 나쁜 의료 관행들이 드러날까 봐 걱정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면… 글쎄요, 자리를 잃을 수도 있고,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들을 부끄럽게 하거나, 그들이 끔찍한 일을 했다고 낙인찍으려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하고 싶은 건 어디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살펴보고, ‘여기서 무엇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꾸면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할 수 있을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죠.

그래서 더 답답한 건,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데도 그들이 상당히 주저한다는 점이에요.”

“최근에 저희가 이런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정보공개청구(Freedom of Information)를 활용한 작업이었는데요. 영국에서는 국민보건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에 질문 목록을 보내면 법적으로 반드시 답변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가 퇴원(discharge) 데이터와 관련된 여러 질문을 보냈어요. 그 결과, 일부 NHS 지역 보건 공단들이 여전히 매우, 매우 위중한 상태의 환자들을 퇴원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그런 사실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게 되면, 바로 그런 순간에 임상의들이 굉장히 불안해하면서 저희 활동에 참여하기를 꺼리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그들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희의 의도는 전혀 그게 아니에요. 우리가 말하고 싶은 건 단지 지금 이곳에서 시스템이 설계된 방식, 그리고 치료 경로(treatment pathways)가 사실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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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프가 언급한 정보공개청구(Freedom of Information, FOI) 조사 결과는 2025년 1월, 섭식장애에 관한 초당적 의원모임(APPG)과 함께 발표한 보고서 《건강권: 섭식장애 환자들은 외면당하고 있다(The Right to Health: People with Eating Disorders are Being Failed)》에서 공개되었다. 밝혀진 바는 이렇다. 체질량지수(BMI)가 11 수준인 환자들을 국민보건서비스(NHS) 산하 병원들이 퇴원시키고 있었다. 일부 의료진은 환자의 회복 의지가 부족하다고 비난하며 이를 치료 중단의 정당한 사유로 삼고 있었다. 무엇보다 거주하는 지역에 따라 치료의 질과 퇴원 안전 기준이 천차만별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어 이들은 같은 해 10월 《섭식장애 사망 예방을 위한 조사 보고서(An Inquiry into Preventing Eating Disorder Deaths)》라는 후속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 그들은 섭식장애가 정신질환 가운데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보건 시스템이 이를 ‘예방 가능한 죽음’으로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비판한다. 동시에 섭식장애는 치료받지 못하거나 부적절하게 치료받을 경우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 있지만, 조기에 적절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회복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많은 섭식장애 관련 사망이 사망진단서에 ‘장기 부전’이나 ‘자살’로만 기재되어 실제 규모가 은폐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었다. 국가 차원의 비밀 조사(Confidential Inquiry)를 통해 모든 섭식장애 관련 사망 사건에 대해 의무적인 조사를 실시하여 재발을 방지할 것, 국민보건서비스(NHS) 및 민간 의료 서비스의 안전 기준을 엄격히 규제할 것,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과 같이 보건, 교육, 사법 분야가 연계된 완전한 예산 지원 기반의 범국가적 섭식장애 전략을 수립할 것 등이었다.

세기 초만 해도 섭식장애 치료의 황금률은 영국에 있는 것만 같았다. 1990년대 영국에서 수련을 받고 돌아온 소수의 정신과 의사들이 ‘모즐리(Maudsley)’라는 브랜드를 내세우며 서울을 중심으로 섭식장애 클리닉이나 병원 내 치료 프로그램을 개설했고, 2001년 말 내가 입원했던 국내 최초의 섭식장애 전문 사립 정신과 입원병동 역시 영국의 치료 프로그램을 그대로 옮겨 놓은 곳으로 묘사되곤 했다.

그 병원의 원장은 영국에서 케밥을 먹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축구를 하다가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누워만 지냈더니 체중이 많이 불더라며, 역시 운동량이 적으면 그렇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영국 병원에서 제공하는 음식에 비하면 한식 식단이 얼마나 건강한지 감탄이 나온다고도 이야기했다.

영국 섭식장애 현대 치료의 기틀을 마련하고 가족 중심 치료인 ‘모즐리 모델’을 정립한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재닛 트레저(Janet Treasure) 교수는 2010년대 초 워크숍과 심포지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바 있다. 성인 거식증 환자를 위한 치료 프로그램인 만트라(MANTRA, Maudsley Model of Anorexia Nervosa Treatment for Adults)는 2006년 울리케 슈미트(Ulrike Schmidt)와 트레저 교수가 발표한 ‘인지–대인관계 유지 모델(cognitive–interpersonal maintenance model)’을 바탕으로 탄생했으며, 이후 임상시험을 거쳐 2017년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and Care Excellence, NICE) 가이드라인에서 1차 치료법으로 권고되며 하나의 표준 치료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이미 1990년대부터 아동·청소년 거식증 치료에는 가족을 치료의 핵심 자원으로 개입시키는 ‘모즐리 접근법’이 확립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전문가들의 임상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2004년 최초의 섭식장애 NICE 가이드라인이 제정되었다.

‘사우스 런던 앤드 모즐리(South London and Maudsley, SLaM) 국민보건서비스 재단 신탁(National Health Service Foundation Trust)’의 일부인 모즐리 병원은 영국 런던 캠버웰에 위치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건강 전문 병원이다. 이 병원은 킹스 칼리지 런던(King’s College London)의 정신의학·심리학·신경과학 연구소(Institute of Psychiatry, Psychology and Neuroscience, IoPPN)와 협력해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정신건강 연구 및 교육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먹지 못하는 여자들(Good Girls)》을 쓴 저널리스트 해들리 프리먼(Hadley Freeman)은 십대 시절이던 1992년부터 1995년 사이 거식증으로 무려 아홉 차례나 입퇴원을 반복했는데, 마지막으로 의뢰된 모즐리 병원에서 만난 트레저 교수가야말로 자신이 “지적으로 이겨먹을 수 없었던” 유일한 치료자였다고 쓴다. 당시 해들리 프리먼은 웨스트 런던에 살고 있었고, 그의 상태가 심각했기 때문에 아홉 번째에는 사우스 런던에 있는 모즐리 병원으로 의뢰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Dump the Scales 캠페인과 섭식장애에 관한 초당적 의원모임의 보고서가 밝히고 있듯이, 현재 영국의 섭식장애 치료 체계는 위기에 처해 있다. 2025년 12월에는 랭커셔 및 사우스 컴브리아 국민보건서비스 재단 신탁(Lancashire and South Cumbria National Health Service Foundation Trust)의 비상임 이사로 재직 중인 보건의료 전문가이자 연구자인 스티븐 왓킨스(Stephen Watkins)가, 2024년 처칠 펠로십(Churchill Fellowship)의 지원을 받아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 등의 사례를 연구한 뒤 영국 섭식장애 치료 시스템의 개혁을 제안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섭식장애 치료의 황금률이라고 여겨졌던 영국이 이제 호주와 뉴질랜드에게서 배우겠다고, 국민보건서비스(NHS) 관계자가 직접 해외 조사를 다녀왔다니.




사실상 2026년 현재, 호주는 세계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섭식장애 국가 전략을 보유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나는 2024년 말 당시 호주 국립 섭식장애 협력기구(National Eating Disorders Collaboration, NEDC)의 디렉터 자리에 막 임명되었던 사라 트로브(Sarah Trobe)를 인터뷰해 그 내용을 잠수함토끼콜렉티브 블로그에 공개한 바 있다.)

왓킨스는 호주의 단계별 치료(Stepped Care) 모델, 그리고 일반의(GP)와 지역사회 의료진이 섭식장애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대규모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정책을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에 반영할 것을 권고했다. 더불어 스웨덴의 국가 등록 시스템 리크셋(RIKSÄT)이 모든 섭식장애 환자의 치료 과정과 결과를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해, 이를 통해 어떤 치료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병원 간 치료 격차를 줄이고 있는 점 역시 영국에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이 후자와 같은 섭식장애 치료 관련 임상 품질 레지스트리(Clinical Quality Registry, CQR)는 호주에도 존재한다. 다만 스웨덴의 리크셋(RIKSÄT)이 1999년에 설립되어 스웨덴 전역 치료 서비스의 약 90퍼센트를 포괄하고 있으며 스텝와이즈(Stepwise)라는 고도화된 웹 기반 임상 지원 시스템과 통합 운영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호주의 트리트 레지스트리(TrEAT Registry, Treatment of Eating Disorders Registry)는 2016년에 설립되어 시드니 공과대학교(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의 섭식장애 연구 그룹과 인사이드아웃 섭식장애 연구소(InsideOut Institute for Eating Disorders)의 주도 하에 주로 대학 및 주요 거점 클리닉 중심의 연구 및 품질 관리 네트워크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내가 잠수함토끼콜렉티브 이름으로 가입해 있는, 비교적 최근에 설립된(2024년 9월) 호주 기반 국제 섭식장애 연구 컨소시엄(Consortium for Research on Eating Disorders, CoRe-ED)은 처음부터 대학이나 대학 기반 연구자, 의료기관에만 국한하지 않고 풀뿌리 시민단체나 독립 연구자까지 아울러 누구나 무료로 가입할 수 있도록 만든 글로벌 플랫폼이었다.

그리고 오히려 그 정책 덕분에 이곳은 매우 글로벌하고 역동적이며 혁신적인 장이 되었다. 가령 나는 일본의 페미니스트 사회학 연구자들, 호주의 정신건강 당사자 인권운동가 사이먼 카털(Simon Katterl),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미국의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이자 전 세계 섭식장애 관련 인물들을 취재해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는 모건 디프리모(Morgan DePrimo)까지 이 네트워크에 합류시키기도 했다.

그렇게 성장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하버드대학교의 스트라이프(STRIPE, Strategic Training Initiative for the Prevention of Eating Disorders)가 CoRe-ED의 새로운 멤버로 합류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꽤 놀랐는데, 불과 며칠 전에는 다름 아닌 영국의 비트(Beat)까지 새 회원 단체로 참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섭식장애 분야에서 현재 호주가 차지하고 있는 대단한 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장면이다.



NHS 섭식장애 치료 체계의 붕괴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의 쇠퇴는 20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가 정권을 잡은 뒤 시행된 긴축 정책과 2012년의 대대적인 구조조정은 당시 섭식장애를 포함한 정신건강 서비스의 예산을 삭감하고 인력 부족을 초래했다. 이것이 오늘날 NHS 섭식장애 치료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 직전에 이르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 되었다.

만성적인 인력 부족은 병의 초기 단계에 있는 환자들을 돌볼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 체질량지수(BMI)가 극도로 낮은 환자들만을 우선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른바 ‘BMI 게이트키핑(BMI gatekeeping)’이라는 기묘한 관행으로 귀결되었다.

브렉시트 논쟁 속에서 캐머런이 물러난 뒤 테레사 메이가 정권을 잡은 2017년은 섭식장애와 관련해 여러 사건들이 겹쳐 일어난 해이기도 했다.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환자의 치료 대기 기간이 지나치게 길어지자 정부는 ‘새로운 대기 시간 기준(New Waiting Time Standards)’을 발표했지만, 섭식장애 전문 임상의 부족으로 많은 지역에서는 여전히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또한 19세 거식증 환자였던 에버릴 하트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에 대한 조사를 계기로, 의회 및 보건 서비스 옴부즈만(PHSO)은 《경고 무시: NHS 섭식장애 서비스가 환자를 어떻게 실망시키고 있는가(Ignoring the Alarms: How NHS Eating Disorder Services are Failing Patients)》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에 국민보건서비스 잉글랜드(NHS England)는 성인 섭식장애 서비스에 대한 대대적인 국가적 검토를 지시했다.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ICE)가 만트라(MANTRA)를 포함한 새로운 섭식장애 임상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바로 그 해다.

보리스 존슨 정부, 브렉시트,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의 시기가 이어졌다.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의뢰는 일부 지역에서 두 배에서 세 배까지 급증했고, 동시에 성인 섭식장애 서비스는 사실상 붕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 결과 환자가 열여덟 살이 되는 순간 갑자기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이른바 아동·청소년 서비스에서 성인 서비스로 넘어가는 단절의 문제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리시 수낙 총리의 시대가 지나고, 2024년에는 노동당이 집권했다.

그리고 2024년 10월, 노동당 소속 킴 리드비터 하원의원이 조력 사망 법안(Assisted Dying Bill)을 발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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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 사망과 ‘말기 거식증’ 논쟁

영국에서 조력 사망 법안 통과를 둘러싸고 대대적인 논의와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호프 버고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아마… 작년이었을 거예요. 아니면 1년 반 전쯤, 그러니까 약 18개월 전쯤이었을 거예요. 그때 영국에서는 노동당 정부가 들어섰고, 새 정부가 출범한 뒤 첫 100일 안에 통과시키려고 했던 법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조력자살 법안이었어요.

이 법안은 한 하원의원이 주도해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는데, 저희가 내용을 살펴보면서 발견한 문제는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안전장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어요. 그 법안은 정신건강 문제라는 관점에서도, 영양 상태나 영양학적 관점에서도 이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었죠.

그래서 저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 활동을 하는 것이었어요. 우선 적절한 안전장치가 마련될 때까지 조력자살 법안을 철회하거나 최소한 보류하라고 요구하기 위해서였죠. 그 과정에서 언론 보도도 꽤 있었고, 하원 안에서도 섭식장애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법안은 결국 다음 단계인 상원으로 넘어가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 시점에서 저희가 실제로 논의 과정에 들어가 몇 가지 안전장치를 수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조력자살 절차로 바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을 일부 넣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영양실조 상태라면 그 경로를 선택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 같은 것들이죠.

또 동시에 이것을 하나의 교육의 계기로 활용하기도 했어요. 정부가 섭식장애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도록 만드는 계기로 삼으려 했던 거죠.”

노동당 의원이 조력 사망 법안을 발의한 것은 사실 영국 사회 내부에서 이에 대한 상당한 논의가 축적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어 스타머 총리 역시 과거 영국 검찰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조력 사망과 관련된 수많은 사건을 접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현행법의 한계’를 절감했다고 말해 왔다.

그는 2010년 ‘조력 자살 사건에 대한 기소 지침’을 발표하며, 조력 자살은 여전히 불법이지만 조력자가 ‘순수한 동정심’에 의해 행동했고 환자가 ‘자발적이고 명확한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면 기소하지 않는 것이 공익에 부합한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노동당은 이 사안을 정당 차원의 공식 정책으로 다루기보다는 ‘개별 의원의 양심’에 맡기는 자유 투표 방식으로 처리했다. 키어 스타머 총리는 찬성표를 던졌지만, 보건부 장관과 법무부 장관을 포함한 일부 핵심 각료들은 취약계층 보호를 이유로 반대표를 던지는 등 정부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안은 2025년 6월 마침내 하원을 통과했다. 그러나 현재 상원에서는 수많은 수정안과 반대 의견에 부딪혀 논의가 지연되고 있으며, 2026년 5월 회기 종료 전까지 최종 통과되지 못할 경우 법안이 폐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호프 버고를 비롯한 많은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활동가들, 임상가들, 연구자들, 그리고 정치인들이 이 법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실효성 있고 구체적인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국민보건서비스(NHS) 상황에서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된 섭식장애 환자들이 치료 기회는 충분히 제공받지 못한 채 너무나 쉽게 죽음의 경로로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말기 거식증(terminal anorexia)’이나 ‘만성 거식증(chronic anorexia)’이라는 진단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영국에서는 점점 더 많은 거식증 환자들이 ‘말기’로 진단되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어요. 이 흐름은 약 2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논의의 영향이 컸습니다. 한 미국 정신과 의사가 ‘말기 거식증’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기 시작했거든요.

그 이후 영국에서도, 특히 잉글랜드 동부 지역의 일부 임상의들이 이 개념을 더욱 강하게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해야 한다는 내용의 논문과 글들을 많이 쓰면서 논의를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점점 그 생각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기 시작했죠.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회복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왜 사람들이 회복하지 못하는지 살펴보려 하기보다는, 그냥 ‘그들은 회복할 수 없다’는 식의 일반화된 주장으로 굳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고 여러 연구들을 살펴보면서도 점점 더 확신하게 된 것이 있어요. 섭식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적절한 치료와 지원만 있다면 언제든지, 어느 단계에서든, 그리고 나이가 얼마이든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들에게 맞는 치료가 제공되어야 할 뿐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런 서사들에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연구와 논문, 자료들을 모아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하려는 작업을 해왔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에서 섭식장애 치료와 관련된 구조적인 실패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섭식장애 상태에서 말기 돌봄(end-of-life care)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치료 서비스를 이용하려고 시도하지만 실제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경우 우리는 다른 트러스트(trust)에 속한 전문가에게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을 받도록 권합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관점과 접근을 가진 서비스로 옮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경우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여전히 우리는 계속 싸우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도 조력자살에 대해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기독교인이기도 해서, 이 문제에 대해 제 입장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백퍼센트 확신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음… 저와는 다른 판단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섭식장애만 두고 보았을 때, 처음 발의된 법안에는 필요한 안전장치들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이 결국 서비스의 공간을 확보하고 병상을 비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사실상 ‘제거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위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집요하게 적절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예를 들어 누군가 일반의(GP)를 찾아가 조력 사망 절차를 희망한다고 말할 경우, 먼저 정확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령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섭식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우선 심리치료를 받고 체중을 회복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야 다음 결정을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솔직히 말하면, 섭식장애 인식주간(Eating Disorder Awareness Week)에 대해서도 굉장히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영국에서는 이 기간이 되면 모두가 굉장히 긍정적인 분위기가 되고, 커뮤니티와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많이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종종 매일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비스의 실패와 시스템의 실패 때문에 죽어가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저는 지금 영국에서 진행되는 섭식장애 인식 캠페인들이 이 현실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상황이 얼마나 충격적이고, 얼마나 끔찍한지를 제대로 보여주기에는 아직 한참 멀었다고 느껴요.”

시발점은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는 정신과의사 제니퍼 가우디아니(Jennifer Gaudiani)가 2022년 <Journal of Eating Disorders>에 발표한 논문 「Terminal anorexia nervosa: three cases and proposed clinical characteristics」이었다.

논문의 취지는 이러했다. 말기 환자를 위한 완화 치료(palliative care)가 필요해지는 심각한 섭식장애 환자가 있을 수 있으며, 이들에게도 연민에 기반한 근거 중심 케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논문은 이러한 ‘말기 거식증’ 환자의 전형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신경성 식욕부진증 진단, 비교적 높은 연령(예: 30세 이상), 이전에 질 높은 치료를 받은 경험, 그리고 자신의 행동이 죽음으로 이어질 것임을 알면서도 추가 치료는 무의미하다고 판단하는 의사결정 능력을 가진 환자가 명확하고 일관되게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경우.”

논문은 사실 세 명의 공동 저자에 의해 쓰인 것으로 되어 있다. 제1 저자는 가우디아니이지만 책임 저자는 원로 섭식장애 전문가이자 정신과 의사 조엘 야거(Joel Yager)였고, 중간 저자는 알리사 보게츠(Alyssa Bogetz)였다.

문제는 이 중간 저자인 알리사 보게츠가 논문이 출간되기 약 1년 전, 서른여섯 살의 나이에 조력 사망을 선택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스무 해 동안 거식증을 앓아 온 ‘말기 거식증’ 환자로 소개되어 있었다.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등장한다.

“한 환자는 이 주제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어서, 자신이 사후에 이 논문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려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있었다. 책임 저자였던 조엘 야거 역시 당시 말기 암과 투병 중이었으며, 이후 2024년 여든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야거는 이미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환자 사례에 대해 오랫동안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그의 말년에 발표된 글들 가운데 일부는,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듯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2018년 한 논문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기를 원한다고 밝힌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자살 예방이 얼마나 복잡한 윤리적 문제를 동반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 충돌할 수 있는 가치들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했다.

예상할 수 있듯이, 이에 대해 동료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의사조력사(physician-assisted death) 과정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 평가에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한 후속 답변에서 야거 박사와 동료들은, 죽음을 계획하고 있는 환자와의 치료적 동맹(therapeutic alliance)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환자가 그러한 의지를 표현했다고 해서 반사적으로 개입해 이를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고 신중하게 주장했다.”

* 출처: Psychiatric Times, “In Memoriam: Eulogies for Psychiatrists and Successful Work-Life Balance.”


가우디아니 등의 2022년 ‘말기 거식증’ 논문 역시 동료 연구자들과 임상의들, 그리고 많은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의 격심한 반발 끝에 결국 2025년 철회되었다.

비판의 핵심은 단순히 한 편의 논문이 제시한 임상적 가설에 대한 학문적 이견에 그치지 않았다. 많은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은 이 논문이 실제로는 치료의 실패와 구조적 결핍을 환자의 ‘치료 거부’나 ‘회복 불가능성’이라는 서사로 전가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료 시스템이 충분한 치료 기회를 제공하지 못한 상황에서 특정 환자를 ‘말기’로 규정하는 것은, 치료의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무엇보다 논문에 등장하는 세 사례 가운데 하나가 실제로 조력 사망을 선택한 환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었다는 점은, ‘말기 거식증’이라는 개념이 단순한 진단적 논의가 아니라 죽음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담론으로 작동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다.

결국 이 논문은 섭식장애 분야에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꺼내 놓았다. 섭식장애 환자에게서 치료의 가능성은 언제 끝나는가, 그리고 누가 그 끝을 선언할 권한을 가지는가 하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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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불가능성이라는 신화

이 같은 ‘말기 거식증(terminal anorexia)’ 혹은 ‘중증 만성 거식증(Severe and Enduring Anorexia Nervosa, SE-AN)’과 그에 대한 ‘완화 치료, 더 나아가 ‘의료 조력 사망(Medical Assistance in Dying, MAID)’ 논의에서 가장 강력한 설득력을 발휘한 것은 무엇보다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이 직접 쓴 독립 연구 논문들이었다.

2023년 알리칸 아사리아(Alykhan Asaria)는 같은 학술지에 게재한 「‘Terminal anorexia’: a lived experience perspective on the proposed criteria」에서 가우디아니가 제시한 ‘말기 거식증’ 진단 기준이 환자의 삶에 얼마나 위험하고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당사자 관점에서 조목조목 비판했다.

첫째, 가우디아니 등의 논문은 섭식장애의 다양한 하위 질환 가운데 ‘거식증’만을 한정해 언급하고 있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중증 거식증 환자들은 우울증, 자폐 스펙트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복합적인 질환을 함께 경험한다. 이러한 복합성을 무시한 채 거식증만을 위중성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접근이라는 것이다.

둘째, 서른 살이라는 연령을 기준으로 회복 가능성을 판단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으며, 더 높은 연령에서도 충분히 회복할 수 있는 환자들에게서 희망을 박탈하는 잔인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셋째, 환자가 ‘질 높은 치료(high-quality care)’를 받았음에도 치료가 실패했다고 단정하기에는, 현재 영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에서 섭식장애 전문 의료 서비스 자체가 매우 부족하고 예산 역시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

넷째, 심각한 영양 결핍 상태에 놓인 뇌는 필연적으로 인지적 왜곡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가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곧바로 그의 ‘자율적이고 진정한 의사’로 간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는 지적이다.

이어 아사리아는 전문가가 환자에게 ‘말기’라는 라벨을 붙이는 순간, 환자가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있던 마지막 회복의 불씨—곧 희망—가 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것은 결국 환자를 죽음으로 이끄는 ‘자기충족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말기’라는 용어는 의료 시스템이 충분한 지원을 제공하지 못한 실패를 환자의 ‘치료 저항성’ 탓으로 돌리는 편리한 수단이 될 위험이 있다고도 그는 지적한다.

이 마지막 지적을 한층 더 철저히 파고들며 ‘말기 거식증’ 담론에 대해 가장 강력하고 논리적인 비판을 제기해 온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로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 연구자이자 활동가인 제임스 다운스(James Downs)다. 알리칸 아사리아가 여성이고 인종적 소수자라는 위치에서 발언해 왔다면, 제임스 다운스는 특히 남성 성소수자의 관점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이었다.

그는 2023년 <The Lancet>에 발표한 「치료가 안 되는 것인가, 치료를 못하는 것인가?(Untreatable or unable to treat?)」라는 글에서 ‘말기’라는 용어 자체가 전문 서비스의 극심한 자원 부족, 연구와 자금 지원의 미비라는 시스템적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거식증이라는 질병 자체가 치료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말기’라는 라벨로 덮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거식증의 신체적 합병증 가운데 상당수는 가역적이며, 유병 기간이 길다고 해서 치료 효과가 낮아진다는 확실한 근거도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의 무용성’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일 뿐 아니라 매우 위험한 주장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문가가 환자를 ‘말기’로 분류하고 치료 중단을 하나의 정당한 선택지로 인정하는 순간, 환자에게서 회복의 기회와 희망을 완전히 빼앗게 된다고 그는 썼다.

이듬해 <BJPsych Bulletin>에 기고한 글 「장기 섭식장애를 위한 치료 경로는 ‘관리된 쇠퇴(managed decline)’가 아니라 ‘회복으로 가는 길’을 제공해야 한다(Care pathways for longstanding eating disorders must offer paths to recovery, not managed decline)」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직접 기록했다.

수년 동안 여러 치료 서비스를 전전했지만 번번이 “이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을 들어야 했고, 어떤 서비스에서는 사실상 치료 중단을 권유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다른 접근과 지원을 만나면서 그의 상태는 실제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 경험이 그에게 하나의 확신을 남겼다.

문제는 환자가 아니라, 환자에게 제공되는 치료의 구조와 상상력이라는 것이다.

“내가 섭식장애를 겪고 있던 당시, 치료진은 발병한 지 겨우 몇 년밖에 되지 않은 내게 평생 완치는 어려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아마 공포심을 자극해서라도 나를 회복시키려 했던 잘못된 시도였겠지만, 그들은 내가 아픈 기간이 길어질수록 앞날은 더 암담해질 뿐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고작 십 대였던 내게 말이다. 투병한 지 어느덧 20년에 가까워진 지금, 얼마간의 진전은 있었지만 나는 여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가끔은 당시 전문가들의 말이 맞았던 건지, 무엇보다 그들의 논리가 정말 타당했는지 의문이 든다. 섭식장애는 시간이 흐르면 치료가 아예 듣지 않게 되는 병일까, 아니면 지금 제공되는 치료의 방식이나 강도가 이 병에 맞지 않는 것일 뿐일까? 내가 낫지 못한 것은 정말 이 병 자체가 시간이 갈수록 고치기 어려운 본질을 갖고 있어서일까, 아니면 20년에 가까운 심각한 투병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시간이 고작 18개월뿐이었기 때문일까? 진단을 받고도 전문 치료를 받기까지 6년이 넘도록 기다려야 했던 상황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남겼을까?

혹시 우리는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SEED(중증 만성 섭식장애)’라는 용어를 정의함으로써, 환자들에게 ‘당신은 일반적인 치료로는 안 되는 특별한 케이스’라는 낙인을 찍어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들은 그저 섭식장애라는 넓은 스펙트럼 안에서 증상이 더 심하고 오래 지속된 경우일 뿐인데 말이다. 이런 식의 분류는 진짜 중요하고도 고질적인 문제, 즉 환자와 가족이 꼭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만큼의 집중적인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할 위험이 있다.

병이 깊고 오래될수록 더 집중적이고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원칙은, 다른 질환들과 마찬가지로 섭식장애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섭식장애 연구 데이터가 여전히 부족한 상황에서, 충분한 자원이 투입된 환경 속에서 기존 치료법의 효과를 제대로 검증해 보기도 전에 환자의 특성만 탓하거나 진단명을 바꾸려 드는 것은 명백한 실수다.

실제로 유병 기간과 무관하게 치료 강도를 높였을 때 치료 결과가 훨씬 좋았다는 증거들이 있다.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시스템의 문제를 환자 개인의 결함으로 돌리는 것은 매우 성급한 태도다. 섭식장애 연구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서비스 체계를 개선하는 등 우리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보기도 전에 말이다. 질병의 원인에서부터 서비스 설계, 다양한 증상에 맞춘 유연한 치료법 개발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아직 개척해야 할 영역은 너무나 많다.

기존의 진단 범주가 환자들의 중증도나 만성도를 감당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포기해 버리기 전에, 지식의 폭을 넓히고 치료 혁신을 이루는 일을 최우선에 두어야 한다.”


같은 병, 다른 운명

나는 호프에게, 내가 꽤 오래 전 우연히 읽었던 한 섭식장애 환자의 조력 사망 기사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했다. 아마 2012년쯤이었을 것이다. “E”라고만 이름이 공개된 30대 거식증 환자의 사례였는데, 당시 그는 심각한 상태에 있었고 더 이상 강제적인 영양과 수분 공급을 받고 싶지 않다며 모든 조치를 중단해 달라고 법원에 요구했다.

특히 그 기사가 내게 큰 충격으로 남아 있었던 이유는, 이 여성이 자신이 써 온 일기장을 판사에게 건넸고 그 안에 고스란히 담긴 고통을 근거로 판사가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는 대목 때문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 여성과 판사의 입장 사이를 오가며 스스로를 대입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 여성의 자리였다면 어땠을까. 누군가가, 특히 판사와 같은 권위를 가진 인물이 내 일기를 읽고 내 고통에 공감하며 그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해 준다면, 그것은 분명 어떤 의미에서는 기쁨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판사가 내 조력 사망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 나는 과연 두렵지 않았을까?
임박한 죽음이 공포스럽지 않았을까?

호프는 한숨을 쉬더니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잠깐 고개를 떨군 채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정말… 굉장히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섭식장애를 겪었던 개인적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가 아주 심각하게 아팠던 시기에는 그 고통이 끝나기를 바랐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만약 그 시기에 그런 선택지가 제게 제시되었다면, 아마 저는 그 길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때 제 곁에 사람들이 있었고, 또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게 도와준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지금 저는 더 이상 그렇게 느끼지 않는 상태에 와 있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정말 두려운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법원 사례들을 보아도 그렇고, 당신이 언급한 사례가 어떤 것인지 저도 아마 짐작이 갑니다. 많은 사람들의 일기나 기록에는 ‘나는 그냥 죽고 싶다’, ‘이 상태로는 더 이상 살 수 없다’ 같은 말들이 적혀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제게는 그런 판단이 내려지는 과정 자체가 섭식장애가 실제로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이 회복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만약 누군가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때는 다시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우리가 어디에서 그들을 실패시키고 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최근 영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어요. 도움이 된다면 나중에 그 자료를 공유할 수도 있는데요. 한 젊은 여성이 보호법원(Court of Protection) 절차를 거쳤습니다. 법적 이유로 그 사건에서는 ‘패트리샤’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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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치료 불가능(untreatable)’하다고 판단되어 치료가 완전히 중단됩니다. 그런데 1년 후,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었고, 가족이 다시 보호법원에 사건을 제기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판사가 사건을 맡았고, 그 판사는 이전 판결—그녀를 ‘치료 불가능’으로 규정했던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영국의 한 섭식장애 치료 병동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례는 저에게 판사들 사이에서도, 그리고 법원 시스템 내부에서도 이해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문제는 누가 그 결정을 내리느냐에 크게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지역 간 의료 격차(postcode lottery)’, 즉 거주 지역에 따라 지원 수준이 크게 달라지는 문제입니다. 아마 당신이 있는 곳에서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노퍽에 있던 환자, 그러니까 이 패트리샤라는 사례가 있고요. 또 옥스퍼드에는 몰리라는 다른 환자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거의 동일한 상황이었습니다. 질병의 양상도 매우 비슷했고, 둘 다 자폐 진단을 받았어요. 하지만 몰리는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고, 패트리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패트리샤도 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그녀는 수년의 시간을 잃었습니다. 반면 몰리는 지금 대학에 다니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사례들이 사람들이 실제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의견의 차이—즉 전문가들의 판단 차이—때문에 누군가에게서 선택권이 빼앗기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그런 점에 대해서는 완전히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문제는 정말 어려운 문제이기도 합니다.”

패트리샤와 몰리의 사례는 ‘말기 거식증’과 ‘조력 사망’ 논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표적인 사례다.

11세부터 거식증을 앓아온 당시 25세였던 패트리샤는 2023년 비위관 삽입을 통한 강제 급식 중단을 요구했다. 영국 보호법원은 패트리샤가 치료에 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능력은 부족하다고 판단하면서도,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급식이 오히려 심리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치료 효과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아 강제 치료를 금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그 직후 패트리샤의 체중이 19킬로그램까지 떨어지는 등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자 가족은 치료 금지 명령의 철회를 청구했고, 2025년 법원은 이전 판결을 뒤집어 강제 치료를 허용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떨까. 그는 현재까지도 신체적으로 매우 위중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강제 치료를 “고문과 같다”고 호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살고 싶다는 의지를 밝히고 여행을 가고 싶다는 꿈을 이야기하는 등 양가적인 상태 속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2025년 8월 당시 패트리샤의 가족은 그를 치료할 수 있는 전담 섭식장애 병동을 찾지 못해 절박하게 도움을 요청했다. 많은 병원이 그의 자폐 진단과 중증도를 이유로 입원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의 사례는 섭식장애를 ‘말기’로 분류하기에 앞서, 환자가 거주지 인근에서 적절한 전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핵심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한편, 웨일스 출신인 몰리 레너드는 15세부터 거식증을 앓았지만 가족에게는 내내 이를 숨겨 왔다. 그러다 18세에 옥스퍼드 브룩스 대학교에 진학해 독립 생활을 시작하면서 거식증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다행히 거주지 근처에 있던 옥스퍼드의 섭식장애 전문 병동에 입원해 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이후 고향인 웨일스로 돌아갔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곳에는 전문 치료 시설이 거의 없어 런던, 브리스톨, 심지어 스코틀랜드 글래스고까지 수백 마일을 이동하며 치료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한때 그의 상태는 의료진이 완화 의료를 고려할 정도로 악화되었지만, 현재 그는 신체적·심리적 건강을 회복해 자신의 사업을 운영할 만큼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호프는 이 사례를 설명하며 영국의 상황을 이렇게 덧붙였다.

“영국의 경우를 보면… 지역에 따라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저는 브리스톨에 살고 있는데요. 런던, 브리스톨, 바스 같은 곳은 비교적 서비스가 훨씬 잘 갖춰져 있습니다. 반면 콘월 같은 지역으로 가면, 지역이 넓게 퍼져 있고 도시화가 덜 되어 있기 때문에 서비스 수준이 훨씬 낮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른바 ‘지역 간 의료 격차(postcode lottery)’가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지역에서는 애초에 이용 가능한 서비스 자체가 훨씬 적습니다. 예를 들어 웨일스의 경우에는 전체 지역에 섭식장애 전문 서비스가 단 두 곳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또 입원 병상의 관점에서 보면 상황이 더 분명해집니다. 영국에는 약 400만 명 정도가 섭식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물론 그 모든 사람들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이용 가능한 병상은 단 455개뿐입니다.

그래서 사용 가능한 자원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는 APPG라는 초당적 의원모임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10월, 영국에서 섭식장애로 인한 사망을 예방하는 문제에 관한 보고서를 발간했습니다.

그 보고서가 나온 뒤 섭식장애를 가진 몇몇 분들이 저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그 보고서를 좋아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그분들은 이미 말기 돌봄(end-of-life care) 상태에 있었고, 다시 치료 서비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서비스들로부터 이미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었기 때문이었어요.

그리고 저는 그 점이 또 하나의 정말 슬픈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존재하는 서비스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은 그곳에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워 그 서비스를 피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서비스가 사람들을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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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섭식장애 인식주간 기간 중에, 나는 호프 버고, #Dump the Scales와 협력해 한국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그들의 SNS 계정으로 알렸다. 



가이드라인과 현실 사이

웨일즈 지역 전체를 통틀어 “섭식장애 전문 서비스가 단 두 곳뿐”이라고 호프가 말한 것은,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이 외래 심리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인 섭식장애 환자가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수 있는 3차 병원 시설을 의미한다. 그리고 2024년 당시 웨일즈는 이러한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성인 섭식장애 병상 8개를 새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은 웨일즈의 약 다섯 배 면적에 인구는 대략 열여섯 배 더 많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역을 통틀어 섭식장애를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3차 병원은 전무하다. 성인 환자뿐 아니라 아동·청소년 환자에게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그나마 섭식장애를 ‘이해’하고 있는 임상가에게, 그것이 어떤 이론과 근거에 기반한 치료이든 외래 상담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조차 한 손에 꼽을 정도이며, 대부분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병원이나 병상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호프는 2007년, 열일곱 살이던 때 자신이 살던 브리스톨 지역의 병원에 무려 1년 동안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체중을 회복했을 뿐 아니라, 음식을 감정과 분리해 식사할 수 있도록 훈련받았고 병동 안에서 대학 입시를 준비해 입학식 두 주 전에 퇴원할 수 있었다. 그 비용은 말 그대로 0원이었다.

다만 호프가 입원했던 병원은 섭식장애 전문 병원은 아니었기 때문에 다양한 증상을 지닌 환자들이 함께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곳에서 제공된 치료는 “체중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여기에 심리치료가 추가적으로 병행되는” 방식이었다.

“그때 제가 받은 치료는 근거 기반 치료(evidence-based treatment)는 아니었습니다. 상당히 재급식(refeeding) 중심의 센터였고, 거기에 약간의 심리치료가 곁들여지는 정도였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체중을 정상 범위로 올리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즉, 건강한 체중에 도달하면 그 다음에는 지역사회로 다시 돌려보내는 방식이었죠.

그리고… 당시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건강한 체중까지 올라갔고, 이후 몇 년 동안은 그냥 버티듯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재발했고, 그때는 치료를 받으려고 해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가 말한 ‘치료를 받으려고 해도 받을 수가 없었다’는 것은, 당시 이미 붕괴되고 있던 NHS 시스템에서 그의 BMI가 곧바로 치료를 제공해야 할 만큼 ‘위급한 상태’로 판단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 일을 계기로 그는 #DumpTheScales 캠페인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어째서였을까? 그 격차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섭식장애 치료에 대한 NICE 가이드라인이 이미 2004년에 마련되어, 섭식장애 치료의 모범 사례로 자주 언급되던 영국에서 2007년 브리스톨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2026년의 대한민국과 비교하면 몇 배는 더 훌륭하고 선진적인 상황이었지만 말이다. 게다가 2007년은 토니 블레어 총리가 6월 사퇴하기 전까지 여전히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 사실은 단지 국가 차원의 표준 임상 치료지침이 수립되고 공표된다고 해서, 실제 임상 현장에서 그 매뉴얼이 그대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을 보여준다. 사실 그렇게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DumpTheScales 캠페인의 다음 목표가 호주나 뉴질랜드처럼 ‘섭식장애 국가 전략’을 만드는 것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이런 일도 있었다. 바로 지난 1월 NHS는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치료 전달에 관한 통합의료위원회(Integrated Care Board, ICB)를 대상으로 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마침 그 무렵 스코틀랜드에서는 획기적인 자살 예방 정책도 발표되어, 나는 이 두 가지를 묶어 기사로 써볼 생각까지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영국 왕립정신과학회는 잉글랜드의 아동·청소년 섭식장애 서비스 예산이 약 210만 파운드 삭감될 예정이라는 사실을 공개하며 우려를 표명했다. 다시 말해 NHS의 임상 진료지침이나 치료 전달 지침과 실제 각 지역의 최전선에서 이루어지는 임상 현실 사이에는, 각개전투에 가깝다고 할 만큼 큰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있다는 것이다.

호프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Dump the Scales 캠페인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는, 물론 서비스에 더 많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믿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희는 서비스에 대한 재정 투입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서비스 내부에서 완전한 문화적 전환(cultural shift)이 필요하다고도 믿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참 이상한 감정이 들어요. 우리가 정말 많은 일을 해 왔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원하는 곳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느낌도 듭니다. 게다가 여전히 정부로부터도, 일부 임상의들로부터도 상당한 반발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분야에서 캠페인을 하다 보면 때로는 정말 독하고 불쾌한 분위기 속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면, 첫째는 정부가 공식적인 국가 전략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저는 정말로 총리나 보건부 장관이 섭식장애를 겪는 사람들과 직접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듣는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우리가 실제로 무엇을 겪고 있는지, 그리고 이 병이 가져오는 정신적인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아주 구체적인 현실까지 깊이 들여다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영국에서 자살 문제나 다른 정신건강 이슈에 대해서는 이런 방식의 대화가 여러 번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섭식장애에 대해서는 아직 그런 자리가 한 번도 마련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저는 그것이 정말 놀라운 성과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대한민국의 섭식장애 경험 당사자들, 그리고 그 가족과 가까운 이들 역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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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서 정치적 주체로

이 글을 시작한 것은 3월 3일이지만, 지금은 이미 3월 8일이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었고, 나는 집 근처 스터디카페에 와 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 불가능할 만큼 마음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통시적인 고통이 가슴을 짓눌렀고, 그 우울과 무기력이 글쓰기를 미루게 만들었지만, 나는 더 이상 나태해져서는 안 되며 지적으로 내 존재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부디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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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는 퇴근 후 화상회의로 프랑스의 젊은 정신과 의사 스티브 빌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며, 조금 전 나는 그와의 대화에 대해 앨리스 웨인렙에게 메일을 써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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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스 베레츠키가 2019년 11월 제출한 박사 논문 「감정으로부터 시작된 시민성: HIV/AIDS 운동에서 환자 시민성과 자아의 변화(With a Feeling: Patient Citizenship and the Transformation of Selfhood in the HIV/AIDS Movement)」는 HIV 환자이자 활동가였던 그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제목에 ‘감정’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논문은, 환자가 자신의 세계와 함께 무너져 내린 감정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재구성되는지를 추적한다.

환자가 활동가가 되는 과정은 대개 뜻밖의 진단, 의료 시스템과의 충돌, 치료 실패, 낙인 경험 같은 개인적 위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 경험 속에서 발생하는 분노, 상실, 공포, 연대와 같은 감정들이 점차 정치적 행동으로 전환된다. 그 과정에서 환자는 자신의 질병을 이해하기 시작하고, 다른 환자들과 연결되며, 의료 지식을 학습하고, 결국 ‘환자 전문가(expert patient)’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환자 전문가’는 단순히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다. 연구 논문을 읽고, 임상시험을 이해하며, 정책 과정에 참여하는 지식 생산의 주체를 의미한다.

베레츠키에 따르면 HIV 운동은 환자를 단순한 치료의 대상이 아니라 정책에 참여하고, 연구를 비판하며, 의료 지식을 생산하고, 공중보건을 변화시키는 정치적 시민으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즉 환자는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인 동시에 공중보건에 책임을 지는 행위자, 곧 ‘정치적 주체(political actor)’가 된다. 질병 경험은 개인의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논문의 핵심 개념인 ‘환자 시민성(patient citizenship)’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환자 운동은 국가, 기업, 의료기관과 협력하기도 하고 갈등하기도 하는 복잡한 정치적 과정이다. HIV 운동은 환자가 단순히 데이터를 제공하는 존재가 아니라 연구와 정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환자 참여는 단순한 형식적 ‘참여 이벤트’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이해될 수 있다. 결국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단순히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사회와 의료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행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 있고, 우리 스스로 말한다

2021년 회고록을 출간한 뒤에도 ‘작가’라는 정체성과 관련된 활동이 특별히 늘지는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2023년 내가 갑작스레 첫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열게 된 계기는, 2022년에 경험한 한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였다. 그 회사는 ‘섭식장애 치료’를 표방하며 국가 과제비를 지원받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2023년 이후 올해 네 번째까지 이 행사를 계속하게 만든 동력은, 그 과정에서 목격한 의료 권력의 무능과 윤리적 부패, 국가의 끈질긴 무관심, 그리고 자칫 자기연민이나 선언적 감상주의에 머물러 버릴 수 있는 환자 정체성에서 느낀 위기감이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학계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접할 일이 잦았기 때문에, 앞으로 몇 해 동안은 그 분노가 섭식장애 인식주간을 계속 끌고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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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현재 한국에서 섭식장애를 겪은 당사자들이 모두 죽음을 앞두고 있나? 아니다. 우리에게 목소리가 없는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나날의 문제를 해결하고 적응하는 방식을 시시각각 개발하며, 우리 자신과 세계를 끝까지 이해하기 위해 공부한다. 세계 곳곳의 동료들과 교류하고 모의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읽고 쓰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적극적이고 열띤 목격자이며, 시인이며, 행동을 취하기 위해 나선 시민이다. 우리는 현재의 의료 시스템을 비판하고, 정부의 정책 부재에 대책을 촉구하며, 그 어떤 권위도 움직일 의사가 없거나 능력이 없다면 우리 스스로 상호 돌봄의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논의하고 전략을 고민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쪽이 훨씬 더 빠르고 정의로운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권위와 명성과 라이선스를 지닌 이들에게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인 듯하다. 이미 시체더미이거나, 몰살을 앞두고 있는 존재처럼 취급된다. 그들은 절박하게 우리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하며, 우리가 전한 말을 고래고래 외친다. 그러나 그 외침은 실질적인 이해 없이, 너무도 어리석은 방식으로 반복될 뿐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좋은 삶’을 기획하고, 이를 위한 공식적 지침을 만든다. 그 모든 과정에는 일말의 수치심도, 께름칙함도, 양심의 가책도 따라붙지 않는다. 우리가 항의하면, 그들은 순진한 얼굴로 되묻는다. “도와주려고 한 일인데 왜 그러세요?”

우리는 이미 죽은 사람인가? 우리에게는 이미 목소리가 없는가?

만약 그렇다고 해도, 스탈린 치하의 레닌그라드 감옥 앞에서처럼, 우리는 우리 무리 속에 있는 시인을 우리의 대변자로 선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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